2016년 7월 7일 목요일

'공공기관의 민간 클라우드 이용 가이드라인' 살펴보기

#오늘의정보보호 #오늘의기사는 여기를 참고

지난해 9월 클라우드법(클라우드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령과 함께 시행이 되면서 그 이후로 올해초부터 '클라우드 보안인증제'가 시행되면서 5월에 설명회도 개최가 되어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 일환으로 '공공기관의 민간 클라우드 이용 가이드라인'가 나와서 간단히 살표 보았다. 
대상은 공공기관이고, 민간 클라우드 이용 가능한 서비스는 IaaS, SaaS, PaaS 라고 클라우드법 시행령의 용어를 따라 설명하고 있다. 즉, '클라우드 보안인증제'는 아직까지는 IaaS 로 한정하고 있는데에 반해 민간 클라우드의 서비는 제한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정보자원의 등급을 정하는 것이 핵심이며 3등급은 통보하는 것으로만 사용이 가능하지만 2등급은 '정책협의체'에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가이드에서는 법령상 '비공개 정보'의 근거 항목을 제시하고 있고, 표준계약서와, 표준SLA 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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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자정부법" 상 공공기관
- 전자정부법 제2조제3호(정의)
- 전자정부법시행령 제3조(공공기관의 범위)

2. 근거 - "전자정부법" 제54조(정보자원 통합관리)
- "국가정보화기본법" 제23조의3(데이터센터의 구축 및 운영 활성화)

3. 용어 "클라우드컴퓨팅서비스"
- 클라우드컴퓨팅법 시행령 제3조(클라우드컴퓨팅서비스)
  > IaaS, SaaS, PaaS 
- "보안인증" - "클라우드컴퓨팅법" 제23조2항 

4. 이용 절차

- 정보자원이 3등급 혹은 한번 이용한 사례가 있으면 통보
- 국정원 "국가 공공기관 클라우드컴퓨팅 보안 가이드라인" 
- 계약서, SLA 작성

5. 이용 자체 검토
- 사전검토 (시스템, 구현성, 경제성)
- 본검토 (정보자원 등급 평균값)

6. 법령상 비공개 정보
- '정보공개법' 상 비공개 정보 ('15.12)
- '공공데이터법' 상 비공개 정보 ('15.12)

7. 자체 구축,운영과 민간 클라우드 비교
- 비교 예시

8. 정보자원 등급 참고
- 등급에 따른 평가기준

9. 표준 계약서

10. 표준서비스준수협약서(S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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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정보보호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아이들은 아빠의 무엇을 닮는가, 어릴수록

출처: http://sierrasourcemedia.com/wordpress/copywrited-material-all-right-reserved/father-and-baby/

커갈수록 아이는 자신만의 생각, 보는 눈, 또 친구가 생기면서 아버지의 겉모습,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점점 더 받게 됩니다.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어릴 수록, 태어나자마는 어떨까요? 아이가 아빠인지 생각해서가 아니라 보고싶은 마음, 안기면 바로 아는 것, 아빠를 알아만 보는 것, 보고 웃는 것.. 이런 작은 것들로 영향을 받겠지요?! 하지만 이게 그저 지나가는 일상적이것, 작은 것 일 뿐일까요?!       

아! 이 점을 조금만 더 빨리 인지하고 (안다고 해도) 깊게 생각하였 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요. 내 자신이 우리 아이들 앞에서 더 잘 정의가 되었을 것이고 기도로 더 무장하였을 텐데요. 하지만 지금도 그리 늦은건 아닙니다. 첫째를 봐서도 그렇고, 둘째는 이제 돌이 방금 지났으니까요. 이제 시작이죠.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빠의 태도, 목소리도 닮지만 어릴수록 영적인 상태를 반영하다시피하는 것 같습니다. 영적이라고 해서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그냥 저 멀리 있은 것으로 치부하는게 아니구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같은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은 태도나 목소리 그 이상이고, 더 본질적입니다. 행간의 뜻 처럼 보이지 않게 나를 주관하는 영적 상태가 아이들의 닮은 꼴에도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이 글의 큰 결론은 없습니다. 어제 퇴근 길 문득 깨닫게 된 것을 마음에 한번더 새기고자 글로 써 보게 되었습니다. 

@David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I surrender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가끔 온다. 이해하려해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면 계속 싸우거나 어느 한쪽이 포기해야 한다.


Hillsong Live "I Surrender"

이 때에는 내가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에 고착화된 평함, 익숙함으로 부터 다시 여행을 떠나야할 차비를 해야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것은 매우 힘든일이다. 내가 나를 떠나야하는 상황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 못 했다간 '자아분리'라는 병 아닌 병으로 정신병원에 가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어떻게 나에게서 떨어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해야한다. 

지금 이 비정상적이고 말도 안되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란 바로 이런 여행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익숙함과 평안함이 가져다 주는 안일함과 인생의 안주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주어지는 시험이자 축복이다. 

나를 다시 한번 더 업그레이드 해야할 때이다. 

바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싸워서 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어쩌면 싸울 수록 숙제는 더 많아진다. 이 때는 바로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내 마음에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인생에 있어 몇 안되는 시간일 것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아무 음성에 아무렇게 생각나는데로 내어 맡기면 안될 것이다. 이럴 때 일 수록 우리의 기초인 말씀과 기도 밖에 없다. 평소의 기초체력이 중요하지는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나를 지으신 분 앞에 솔찍해지고 도우심을 구하자. 

다시한번 다짐하지만, 싸울 때가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뿐아니라 나 자신과도 마찬가지다.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자 애쓰는 것은 진정으로 솔찍해지는 것이다. 그동안의 겉모습, 잠깐 조금 솔직하지 않은 겁데기를 탈피해야할 시기인것이다. 뱀은 생애에 허물을 몇번 벗은다고 하더라? 아무툰 엄청 많이 벗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자신이 벗은 겁데기를 양식 삼아 먹는다! 

결론이다. 

이런 경험은 순간이다. 순간에 결정된다. 싸우지 말자. 억울해할 필요 없다. 하나님 앞에서라. 업그레이드 시기를 즐기는 것이다. 

- Your David. 

             

2014년 5월 31일 토요일

찾는다, 찾아온다

출처: http://blog.johnrchildress.com/2014/03/30/a-new-paradigm-for-executive-search/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찾는다. 아침에 출근하며 들을 노래를 검색하고, 볼만한 기사가 없는지 본다. 바야흐로 검색엔진이 지배하는 세상아닌가?!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의 핸드폰의 80%이상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이니 말이다. 우리는 덕분에 편리해진 이 스마트폰으로 맛집도 찾고 목적지, 길, 방향, 찾고 싶은 것 무엇이라도, 하다못해 친구도 찾는 세상이다.

찾는 것이란 전제에는 항상 더 좋은 것이 없을까, 이왕이면 더 싸고 질 좋은 것,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깔려 있고, 그래서 검색이라는 먼길을 나선다. 검색의 심리에는 불안함이 있다. '못찾으면 어떻게하지?'

이것은 정보가 주는 잘 못된 결과다. 정보란게 편리한 것 같지만 이로인한 스트레스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아마 정보화는 지금 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내 마음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찾는 것  말고 찾아오는 것 - 그것에 우리는,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지? 문든문득 드는 생각의 인사이트, 묵상, 휴식 등이 있는지 말이다. 우리 삶은 온통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잠시라도 눈을 감고 나를 비롯하여 가족, 주변사람, 이 나라, 온 세상을 (인터넷 검색 없이) 생각하고 그 결과를 행동에  옮긴 적이 있는가 말이다. 나부터서도 외부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다. 누가 그랬고 뉴스와 반응이 이러하니 나도 그정도 생각하여하나 싶다. 

하지만 이와 반대편 입장에서 이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어찌 정확이 아냐는 거다. 지피지게 백전백승! 외부의 정도에 대비해 생각을 넓혀가야, 비교해야 내가 어찌할지 알지 않겠냐는 거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많이 찾아서 아는 만큼 내 행동, 생각의 반경이 커진다는 것은 정말 그렇다. 

정말 그런가? 이것도 정보의 역린아닐까?! 즉, 내게 약한 부분이 있어서 뒷쳐지고 나란 존재를 남과 비교하여 어느 위치에 두지 읺으면 불한한 그 무엇 말이다. 

왔다 갔다 한다. 무엇이 옳을까?! 내 생각에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불안함인데, 이는 인간의 한계 - 세월호 앞에서 느끼는,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하루하루 반복하며 느끼는 나의 실수와 무능함에 직면하여 느끼는 존재을 불확실성 때문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하란 말인가? 그 누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그러다 방대해진 이 정보화 바벨탑을 매일 검색하며 사는 것 아닌가?! 

나는 결국 인간의 바벨탑이니 하며 거창하게 논하려는게 아니다. 때론 검색에만, 외부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멈추어 서서 나를 찾는 사람, 필요로하는 곳, 손 길,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음성(성경 망씀)에 마음을 열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다. 이는 검색으로 안된다. 앉아서 태고로부터 정해진 말씀을 읽고 외부로 향한 눈을 감고 내면에서 들리는 - 생각과 영혼이 이어지고  하나님 음성으로 문득 떠오르는 그것을 매일 잡아야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미래가 있고 그래야 남을 인정하게 되고 세상을 향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2014년 4월 24일 목요일

My Son's Favorite Things

매주 목요이 마다 팀 내 몇 명과 함께 영어 발표 스터디를 한다. 주제는 아무거나. 주로 자신에게 있었던 일상적인 일로 정했지만, 그것이 이벤트가 되었던 여행이 되었던 괜찮고, 또 나누고 싶은 좋은 기사나 프리젠테이션, 혹은 요리나 음식에 관한 것 등 주제가 다양하다. 다만 영어로만 한다는 점. 참여하는 사람은 4명 정도다.

어제는 무얼할까 한 주 내내 고민하다가 구글 플러스에 백업된 지난 사진들을 보니 아들 보배가 좋아하는 것들이 눈에 많이 보였다. 그래서 주제를 "My Son's Favorite Things"로 정하고 간단하게 파워포인트 3장에 몇개 사진 넣어서 발표했다. 다들 재미있어했다. 다른 사람들은 지난 주말에 산에 간 이야기, 뉴욕의 명소, 그리고 네이티브와 영어로 메일을 주고 받은 일상에 대해 소개했다.

이 모임에 영어 네이트브나 교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이 우리끼리 말하고 끝낸다. 그래서 내가 발표한 것을 여기에 옮기는 것도 많이 틀릴 수 있지만 그저 자주 보고, 앞으로 계속 일상에 대해 영어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1

First thing is playground. No matter about wherever playground is. He is always OK that is even small in my apartment, or that is also big like Everland. Both of thme is same to my son until now, just until now.

Second thing is a car. He bought this car in flea market last Sunday. Actually this was very dirty, when I saw it. So I didn’t want to buy it. But He grizzled and cried but there was no choice to only buy it to him. So His mom cleaned every nook and corner inside of the car. Finally he got the car, then he look like very happy and smiled eventually.

And third thing is the animal especially the elephant even like a doll. Now a days, going to the mart, my son directly go to the toy section. Why is the toy section placed at the entrance of mart? I realized why it is that I have kids in my family. So in this picture, my son didn’t keep going any more, even though there was a lot of things to have to do. He want to get this animal doll - one is tiger and  another is elephant. Finally I and my son compromised to buy only one that is elephant, later on. So he continuously talk about how do he likes elephant after leave mart. I promised that if he likes that until May next month, I buy it to him as children's day presents. So he continue to say “I love the elephant, I love the elephant ... !!” restless at home.

#2

Next, My son really like thing is going to the Zoo. That picture is taken in the zoo which name is 테마주주동물원 in Il-San. I think an admission ticket was very expensive for all my family. This zoo’s main feature is that we can feed directly animals and can look closely them.

Second thing in this page, is balloon playground that is very good to young kids in winter very cold weather. And my son also loves this place. There are a lot of playground such as mart, shopping mall and so on, even though in my apartment once in a while.

Third thing is reading books especially just before turn off the light. I say to my son. “Young boy! Come on, go to the bed, and have to sleep!”, and then my son response instantly “No. I want to read the book, read to me, one, two, three!!” this is conversation before fall asleep.

#3


Last thing is kitchen play structure is a kind of toy. He cooked as this toy and give it to me every night. I think he loves cook like his mom. And upper picture that is very funny. My son is having this toy taken by my daughter. She is very active not like my son. So My daughter always win him. My son also concede as well.

Thank you~!

2014년 4월 17일 목요일

고난주간 성 목요일 묵상 2014년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 요한복음 13:5



주찬양 증인들의 고백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고난주간에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어 기억을 위해 정리해두고 싶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사건이 아주아주 기억하고 싶은, 또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이 말씀 13장 처음부터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것을 아시고 발을 씻겨주시는 것으로 나온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위기였을까? 형용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 때 그 마음을 갖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눈을 바라볼수나 있었을까?! 

내가 오늘 나눌 에피소드는 여기에 비하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작은 경험이지만 이 사건을 겪은 날이 고난주간이니 나에게 개인적인 뜻이 될 것 같아 써 내려가본다. 

첫번째는 발바닥을, 그것도 정 가운데를 푹 찔린 사건이다. 아팠다. 걸어다닐 때 절룩 거릴만큼 딛고 서있기 힘들 만큼 좀 오래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조금 아픈 것을 우리 예수님이 당하신 고초에 비교하여 그 아픔과 시련 당하신 것을 가늠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정도 찔린 것도 아픈데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것은 초딩의 생각일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어떤 아픔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처럼 단지 이 시기를 기억하고 은혜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당해야할 고난과 죽음을 대신하셨다. 

두번째는 버림받는 꿈이다. 꿈에서 하늘을 날았다. 아주 중요한 물건을 나르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날수 있었고 쉬웠는데 높이 갈 수록 점점 높이감이 보이면서 무서워지기 시작한거다. 그러면서 추락하고 말았다. 내가 나르던 물건을 떨어 뜨렸고 거기서 나쁜 물질도 흘러나와 심각해졌다. 나의 형편없음이 다 드러났고 아주아주 형편없는 (근데 꿈에서 그게 다 맞다고 인정했다) 놈에 불과 했고 구제 불능이었다. 그래서 내가 버림을 받아도 뭐라 반박 할 수가 없었다. 그 꿈을 꾼 날 밤에 시간마다 깨면서 이상했는데 결국 이 꿈으로 깨어나고 말았다. 시간은 새벽 4시여서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일어나선 꿈이 잘 기억이 안났는데 출근하다 버스에서 졸린 가운데 다시 생각난것도 신기했다. 

두 에피소드를 생각하면서 나는 절망스럽지만 예수님의 고초와 십자가 죽으심으로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하나는 작은 육체의 아픔으로, 또 하나는 마음의 아픔으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도 기억할 만한 고난주간 사건이었다. 

고난주간 성 목요일에..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고난주간 성 수요일 묵상 2014년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 요한복음13:25, 새번역


아름다운사람들 "유다 같은 나"


첫째 아들 보배(태명)는 이제 40개월이다. 말도 곧잘 하고,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보배는 어린이집에서 말씀을 암송하는데 (지금 줄줄 암송하는 구절만 7개) 어제도 자기전에 해보라고 했다. 이번엔 말씀 구절이 워낙 길어서 같이하다 내가 틀리니까 거꾸로 나를 가르친다. 자기 말을 따라하라는 거다. 내가 보배에게 가르쳤던 그대로 말이다. 어찌나 놀람과 웃음이 나오던지 한참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그만큼 내 아들은 크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 둘씩 내가 손이 가야하는 것도 혼자서 한다. 신기하기만 하다. 화장실도 이제 같이만 가면 알아서 잘 한다. 앞으로 이렇게 그는 나의 손길을 덜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이제 혼자하는 걸 더 좋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만큼 육체적이지 않은 정신적인 부분, 또 영혼의 문제에 가까이 가도록 신앙의 훈련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에 총체적으로 봐서는 커갈 수록 서로를 공유하는 시간은 많아질 거라 기대해도 되겠지?!

하지만 보배는 아직 어려서 대화중 대부분이 소위 통제적인 말, 명어조가 많다. "그거 안돼, 이거해, 먹어" 등등이 주요 저녁 시간에서 잠들기 까지 분위기다.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그대로이고 보배는 커서 나와 같은 키에 같은 눈 높이로 대화하는 상상이다. 그냥 문득 든 생각인데 미래를 잠시 엿본거 같은 뭔가 모를 감정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기에 보배가 커서 어떻게 같이 지낼까는 그저 상상에 불과 했는데 (좀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대로이고 보배만 커서 나랑 같은 나이 혹은 같은 성인이 되어 내 옆에 있게되면 어떨까? 이것은 참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아, 인격적으로 대하는게 이런거구나' 느낌이 왔다. 지금 비록 그가 어려서 부모에 의해 많이 통제를 받아야하지만 어느정도 크면 전혀 아닐 것이다. '아, 그럼 내가 보배를 어떻게 대해야하지? 적어도 마음만으로는 그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예수님은 누가 자신을 팔지도 다 아셨으면서 끝까지 그를, 그리고 모두를 정말로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어찌 이럴수 있을까 할 정도로 평안하셨고 자신의 때가 가까이 오셨음을 아셨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인성보다 이제 신성에 더 가깝께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을 것 같은데 여전히 그 한사람을 포함해 모든 제자들과 또 우리 모두를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신성이 인격을 대하는 모습이다. 인성은 참 인격적이지 못할 때가 많은데 우리에게 내려오신 신성은 우리를 진정한 인격으로 대하셨다. 

내가 보배에게 온전함으로 대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나도 하나님을 그와 같이 대해야겠다. 하나님이 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니-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고난주일 성 수요일에..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고난주간 성 화요일 묵상 2014년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 요한복음 12:24-25


천관웅 "밀알"
http://youtu.be/zbBoxceEixg

매주마다 회사에서 신우회 모임을 한다. 점심시간에 잠깐 모여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도 하고, 약 한 30분 정도 그날그날 묵상 내용에대해 잠시 이야기한 후, 나눈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인도는 서로 돌아가면서 하는데 인도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하기도 한다.

오늘도 모임을 가졌는데 오늘 묵상 주제 때문에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이 떠올랐고 이를 고난주간 성 화요일에 간단히 메모해본다.


바로, '실패'에 대한 것이다.

나중에 한번 따로 정리하려고 하는 것 중에 #퇴근길 에 대한 생각이 있다. 항상 급하게 퇴근을 하는 편이라, 퇴근할 때 생각이 많다. 걱정도 많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퇴근길에도 이어지곤 한다. 메일 확인이라던가, 일정 관리, 전화 통화 등을 하면서 퇴근 아닌 퇴근을 하는 것이다. 이 때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중에 '실패'에 대한 느낌이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다.

하루는 이 '실패'에 대한 느낌이 나를 너무 짖누르는 것을 느끼고는 그러 감정부터 시작해서 내용, 상황 등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이 실패에 대한 느낌은 나의 정체성부터 많은 부분을 잡고 휘두르지만 이것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흩날리던 낙옆들이 마치 바람이 잦아들면서 다시 길위에 떨어지고 그것을 다시 빗자루로 쓸어 모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나름 좋았다.

그 때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참 실수를 잘 하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가 나를 너무도 힘들게 했다. '나는 원래 그런건가? 고쳐질 수 없는 부분인가?' 무엇보다 나의 실수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힘들어 진다는 사실이 더욱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 하실 때까지만해도 모든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찬송을 했는데 일주일도 안되 돌변하더니 결국 같은 입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다. 

그럼, 예수님은 실패하신걸까?!

잡히시고 온갓 고초를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으실 때 과연 스스로를 실패하셨다고 생각하셨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다. 

실수던 실패던 그것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뼈를 깍는 노력도 해야한다. 우리 주님도 그것을 바라실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고 내가 하나님을 통해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실패의 경험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 노력으로만 사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씩 주님께 맡기는 연습으로 삼고 꾸준이 그것을 내 노트와 마음에 기록해간다면, 그리고 거기에 말씀을 더한다면! 반듯이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 내가 일하는 분야에 이슈가 많다. 연일 '최악, 최대'의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나와 관련된 일은 매달 실패 케이스(lowlight - highlight의 반대)에 오르고 있다. 나는 이 문제들을 단순히 '아- 내가 잘못했구나'로 판단하고 생각할 있었지만 이 문제들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매우 잘못되었고 바로 잡혀야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 문제를 들여다보면 너무 복잡해서 나는 커녕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또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생각도 (거기서 절대 그치지 않고) 자르고 자기 주장(강요)까지 한다. 내가 잘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다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다. 물론 여러가지 경험도 같이 하지만 오늘은 그 중 실패에 대한 생각으로 고난주간을 통과하고 있다. 

실패라는 것이 내 맘대로 혹은 내 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독생자 아들과 함께 세상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그 세상위에서 죽이셨다!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고난주간 성 월요일 묵상 여러가지 생각 2014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스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 요한복음 12:7-8



박종호 "눈물로 씻은 발"
http://youtu.be/XM56yGD0cwM

글을 너무 오래 동안 안썼네. 책도 마찬가지 거의 읽지 않고 있다. 뭔가 잘못되가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컴퓨터가 (일예로, 집에서 사용하는 내 노트북, 맥프로)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이러스도 막 걸리고... 바이러스가 걸리는 이유는 그런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패치도 안하고 백신도 설치 안하고 막 아무데나 접속하고 아무거나 다운받고 하면 최악의 경우 수일 내 그 컴퓨터는 부팅도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컴퓨터와 오래 일을하다보니 별 생각을 다 한다. 하지만 너무도 적절한 생각 같다. 거기에 한번더 생각한다면 이 컴퓨터 안에서의 글쓰기, 이 블로그야 말로 또 내 내면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쓰고 싶지만 쓰지 못하는 글... 매일 대면하여 내 마음을 쏟아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의 시간 부족...

일하다 문득, 오늘의 고난주일 월요일인게 생각이나 이 마음을 어디에 잠깐 적어두어볼까 하다가 다시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마지막 글이 작년 2013년 8월 26일이다. 그만큼 내 마음이 방치되거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가 하나 딱 있다면 그 간 우리 둘째가 첫 돌을 맞았다는 것이다. 내 마음은 정지되어 있었지만 우리 딸은 컸다! 우리 첫째 '보배'(태명)도 부쩍 컸다. 말도 너무 잘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고난주간을 맞아 다시 마음 앞에 서는 일을 해야겠다. 그간 새로운 비전도 생겼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느때보다 감격스럽다.

다시 고난주간 월요일의 마음...

아침에 문득 오늘의 고난주간이어서 이 기간을 통해,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좀더 새로워지는 한주가 되기를!
정말 그랬다. 고난으로 인해 사람은 새로워지는 것 같다. 내가 당해야 할 고난 - 내가 이제것 살면서 당해보지도 않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고난을 우리 주님이 대신 당하셨다. 예수님은 그로 인해 부활하셨다. 그 부활의 영광은 고난의 참예한 사람에게 (감사하게도!) 동일하게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고난은 나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나를 잘 알기에 참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나를 절대 뛰어 넘을 수가 없다. 나로인해 그 무언가가 고통을 준다면, 예수님으로 인해 그것이 치유되는 것도 경험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아직 어렵다.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글을 쓸려나)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너무도 잘 안다. 그의 행적 - 복음서, 그 성경 말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나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해가 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온전히 평온해진다. 나 혼자 나를 생각할 때와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좀 더 새롭게 되어지는 나를 기대한다. 다시 나를 대면하여도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또 다른 나인 우리 아내, 아이들을  대할 때도 좀 더 새롭게, 좀 더 하나님 닮은 모습과 방법으로 대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2013년 8월 26일 월요일

영어에 살자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21606462@N02/4622711317

처음으로 외국인과 전화로 대화를 했다. 물론 관광을 가서 호텔에서 직원과 통화하는 것 말고 말이다.

다 알아듣지 못하고 다 말하지 못해서 회사서 집에 오는 동안 영어 방송을 들으며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영어는 언어니까 습득하고 공부의 대상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느낌- 그러니까 삶의 여러 모습과 연관이 깊구나 했다. 

물론 이는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아, 영어 생각만큼 잘 안되네- 영어에 살아야 겠구먼" 했을 때 똑 같이 영어를 들으며 출근 할 때의 관점이 이전과 약간 달라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느낌에 불구하다. 이것이 사실로, 또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하던데로 계속 연습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해야할 것이다. 

2013년 8월 5일 월요일

열왕기상 11장을 항상 기억해야한다.

신우회 1년 성경통독으로 열왕기상 - 솔로몬의 이야기를 읽다가 묵상한 내용입니다.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44426846@N03/6983252539

하나님은 죄악을 그대로 놔두시지 않는다. 

솔로몬은 그렇게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받아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가 말년에 하지말아야하는 외국여자를 데려왔고 또 그들과 즐길 뿐 아니라 그들이 하자고 하는데로 우상 신 섬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죄 짓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했던 것이다. 그의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를 읽고 바로 이 부분을 읽어서 그런지 그는 허무에 빠져버려 이제는 헛된것 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살기로 한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은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그 때에도 나타나 친히 말씀하셨고, 게다가 그렇게 평화로운 지평이 대적들이 하나 둘 일어나는 상황으로 개입하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말씀을 7월 중순께 읽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전도서를 다 읽을 때 그저 솔로몬의 최후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 다음 장을 이어 읽기 위해 이전 장의 내용을 훑어 보던 중 이 말씀이 나의 상황과 함께 마음에 들어오게 된것이다. 바로 지금의 상황 때문에 그런것 같다. 

나는 나의 지금 경험하는 상황이 그냥 그저 단순히 마음이 아픈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솔로몬처럼 지혜를 가진것도 아니요, 또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나를 그와 같이 소중하게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말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죄를 짓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라는 것이다. '내가? - 나 힘들어.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런데 죄라니? 죄는 한가롭게 할 것도 없어서 쓸데 없는 짓으로나 하는거 아냐?' 하는 생각이 항상 나를 죄 없는 사람, 죄 지은 틈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를 지었고, 아직도 죄인이며, 삐뚤어져 있고 옳바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되었다. 솔로몬처럼 돈이 없어서 그렇지 나는 이미 마음으로는 벌써 외국 여자들에다가 우상 산당을 백만개도 더 지었다. 그 우상은 나를 즐겁게하는 세상의 모든 신이다. 나의 오감(five sense)이야 정말 몇 안되지만 그것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산당은 얼마나 많은지 눈앞에 가득할 정도다. 

자, 이제 실상과 상황, 그리고 말씀의 메시지를 알게되었으니 결단을 할 때다. 결단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말로도 혹은 글로도 아닌 행동으로, 매일의 삶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있는 이 지하철의 공간에서 또는 새벽의 조용한 시간에서 소리 없이 더욱 치밀하게 나의 생각의 직조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상하게 하는 좀벌레 다루듯이 해야한다는 말이다. 

솔로몬처럼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3년 7월 5일 금요일

주말을 맞이하는 마음 자세

이번주는 정말이지 한 것 없이 월요일 다음 금요일이 된것 처럼 한 주기 쏜쌀같이 지나깄다. 오히려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것은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된다. 

이런 느낌은 월요일 출근길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해서 알게된다. 마치 다른 사람이 따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금요일 희망에 가득찬 퇴근길에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금요일의 마음을 월요일 출근길에도 동일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에서다. 월요일이 힘든 이유는 육체적으로  피곤함은 더욱 아니고 한 주가 걱정되서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경우) 주말을 (안식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다. 즉, 금요일의 기대치가 월요일에 그만큼 정리되지 못하기 때문에 빈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여기에 적는 것은 계획이 아니다. 어떻게 주말을 보내겠다는 어떤 의지나 결의를 다지고자함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완전히 반대일지도 모른다. 


내가 계획해서 '이렇게 저렇게 주말을 알차게 보내야지' 라고 생각하면 100% 실패한다. 내가 의지가 약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의 경우는 그랬다. 만족할 수 없은 것은 월요일 아침 뿐이 아니다. 주말 내내 초초하고 불안한 내면을 간직하고 지낸다. 그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 모두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내가 결단내리고 '헌신'해야하는 것은 나 자신의 기대가 아니라 가족이고 나의 내면세계이다. 나의 중심, 근본된 마음 말이다.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 자신의 마음에 헌신해야한다는 말이 모순으로 느껴질수도 있겠다. 전자의 나 자신은 사실 나 중심이라기 보다 내가 만든 기대치에 불과하다. 후자처럼 마음을 집중해서 보고자 할 때 시간을 초월할 수 있고 온전히 나를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할 일을 진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을 나는 이번 주말에 헌신해 보려한다. 

가족이나 만나고 챙겨할 사람에게 헌신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말은 그들과의 관계에 힘써야한다는 것이다. 관계 중심이 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리라. 이번주만이 아니라 조금씩 쌓아 가는 것이 아닐까힌다. 

///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 글을 쓰며 퇴근하면서 해야할 회사 일을 가지고 가서 해야함에도 자료는 두고 오고 지금 이시간 우리 보배는 열이 38도가 넘는단다. 

2013년 7월 2일 화요일

확신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7시간 근무한 것보다 1시간 이야기를 하는게 힘들구나 - 새삼 알게된다. 

오늘 같이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으로 이어진다. 

생각보다는 질문이다. 나는 어떤 확신으로 이자리, 오늘날까지 이르렀지?! 어떻게 중요한 인생의 고비를 넘겼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보잘것 없는 믿음과 확신이었지만 나름 확신을 믿으며 온 것 같다.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특히 오랜기간 동안 아내가 내 곁에서 때론 지팡이 또한 말씀의 전달자로서 지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나의 확신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확신을 확신 할 수는 있는건가?!

동등한 개념과 동등한 레벨의 속성이 서로 확신을 줄 수 있을까?! 즉, 내가 생각하고 내가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 모순아닐까?!

아니다. 이건 모순이 아니라 단편적이서 그렇다. 여기에 인정이라는 개념과 관계라는 시간을 드리우면 확신은 확신을 할 수 있다. 

확신을 인정해주는 누군가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자동 응답기처럼, 자판기처럼 나오는 무엇이 아니리라. 시간 속에서 관계가 깊을 때 찾아오는 믿음라 할 수 있다. 

내가 어떤일을 하고자 했을 때의 확신을 확신할 수 있는 힘은 그 일과 그 주변에 관련된 사람들의 인정과 그 인정을 끌어낼 수 있는 지속적이고 신뢰된 깊은 관계가 규명을 해준다. 물론 이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 인생이기 때문에 사람을 지으신 만군의 여호와의 인정과 인격적이고 살아있는 관계여야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또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Here and now, I'm looking for You, my Lord.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가장 가까운 예배, 일상의 노래를 들으며,,

한웅재2 앨범의 한 노래를 들으며 오늘의 신보라 알려보려고 페북에 올리다가 작은 글이 이어져 여기에 기억해둔다. 


두마음

그대의 마음 속 어딘가 있는 그 빛을 일상으로 꺼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줄 그 힘을 세상으로 꺼내, 한 순간 나를 건너 그에게로 나를 넓혀가는 그 때,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 하늘이 말씀하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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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딱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하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가 아닌것 같기도 하는 마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계속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 하지만 그 때는 결정의 순간 아니라 결단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생각의 주체자인 나를 떠나서 나를 지으신 분을 생각하고 맡기기 시작하면 생각의 길은 바람을 타게되는 것 같다. '그 길이 맞아?' 로 시작했다가, '그래, 그 분과 함께 가보자!'로 마무리 하면서  앞으로 쑤욱 나아가게 되는 경험- 사람이 혹은 일이 힘들어질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면 그분의 마음으로 사람도 일도 품게 될거다. 그런 일이 일어날려면 내 손에 꼭 쥐고 있는 무거운 것이 무엇이 없나 보게 되고  좀 더 마무리를 잘해보려고 하게 된다. 

새로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마음에 이어본다. 

<광고천재, 이제석> 을 읽고,,



회사 컨설팅사업본부 독서 활동 독후감 입니다.

이 책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라는 책과 대결하여 팀 내에서 선정된 책입니다. '광고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주제 키워드였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라는 책도 읽고 싶어 집니다. 독서는 참, 욕심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욕심만큼 또 시간이 없습니다. 특히 저에게 올해는 더욱 그런데, 그나마 회사 내에서 이런 독서 활동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독서는 독서클럽처럼 서로 약속하고 읽어야 많이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책 <독서 천재, 이재석>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석'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광고 작품과 함께 광고쟁이가 되는 과정에 대해 가볍게 쓴 수기 같은 책입니다. 그런데 약간 별난 모양이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춘기의 반항 정신 같은 것이 있어서 학생 시절과 미술, 광고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과정, 그리고 작품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 반항 정신 - 이 책에서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달리 보는 정신이 책 전반에 걸쳐 흐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너무 가볍고, 자기 자랑 같고 그 기치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아 책을 읽기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짧은 시간에 이루고 경험한 것이 사실이기에 또 그것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좋게 말하면 투명하게) 가볍게 정리한 것이어서 나름 좋았습니다.

현재 그는 '이재석의 광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홈페이지 http://www.jeski.org 에서 보더라도 비슷한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광고계에서는 이분이 유명한 만큼 표절 시비에 많이 연루가 된 것 같은데, 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가서 더 알아보고 오세요" 같은 문구)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래의 마지막 에필로그의 문구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비티 - 관점을 바꿔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 - 생쥐가 강할까? 코끼리가 강할까? 크다고 강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쥐에게서 강한걸 찾으면 그 게 곧 강한 것이다. 이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고 값어치 있는 걸 발견하는 길이다. (내가 원하는 룰러 싸워야 이긴다)
여기에서 관점을 바꾼 다는 것은 자기만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앞세운다는 말과 일맥상통 할 것입니다. 그것이 디자인이든지 광고이든지도 관계가 없겠지요. 자신이 진정으로 노력해서 해당 과제나 문제의식에 대해서 해결 방안을 찾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정진한다면, 이제석 저자가 했던 디자인의 노력이나 결과처럼 좋은 피드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소한 문서를 하나 쓰거나 더 작게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정리할 때 조차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내면서 해결하는 과정이란, 무슨 일을 하던지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내가 이 책에서 보았던 것은 그가 얼마나 광고를 잘해서 혹은 얼마나 상을 많이 타고 성공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전개해서 해결책을 찾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일이나 분야보다 디자인, 특히 매체 광고에서는 여실 없이 들어나 보여 차이가 극명하게 보인다는 것외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택하는 과정 - 끊임없이 생각하고 메모하고 이를 구현(포스터나 퍼포먼스 등)하여 개발하는 과정이 정직하고 정교하다면 무엇이든지 일을 만들고 말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서 책의 내용은 위 홈페이지의 대표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학교를 다니면서 해당 교수의 과제를 해결하여 함께 만들어가는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광고 특성상 상품을 극대화 시키고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 온갖 치장은 다 하지만 실제 중요한 것은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의 내용(컨텐츠)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광고비와 상관이 없고, 누구나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화려하게 유명 배우를 등장시켜서 시선만 끄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메시지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공익 캠페인 디자인에 더욱 매력을 느낀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적용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메시지를 그것이 상업적이던 공익적이던 광고로도 메시지를 전하지만 내가 하는 일 하나 하나로도 할 수 있고, 나와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다 느낌으로 혹은 알게 모르게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나도 또 그렇게 느끼고 있고요. 

그런면에서는 매우 도전이 되는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의 시작

<보안의 진실> 이 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만큼의 신간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보안 기술, 적어도 움직임은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시도되었고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언급하며 보안이니,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고 있다느니 따위의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은 속빈 강정 씹어먹는 소리를 하자는 것 아니라 저의 생각이 이 책의 전체적인 논조에 닿아 있도 또 더 나이가 이 시대의 리더십이 개방과 평준화의 이름으로 바뀌고, 재편되고 있는 것을 보며 보편적이기도 하지만 보수적이기도 한 보안 시장과 그 시장을 주도하는 개념/기술과 또 공격 기법도 바뀌고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그리고 앞으로 관련 있는 책들을 읽으며 저의 저그만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자, 먼저 이 책의 서평을 통해 시작해봅다. 


오히려 질문이 많이 생기게 한 책입니다  

1. 보안이 산업인가? 무엇을 파나?
2. 보안은 믿음에서 기인하나 두려움에서 기인하나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도 추상적으로 말하면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래 이 일을 하면 자연스레 하는 질문인가요?! 그래도 책을 쓰고 실천에 옮기고 한 회사의 일부분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것이 대단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안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고, 그래서 알지도 못하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고, 그래서 보안 기업들은 실제 (사용성이 있는) 보안보다는 (처음그렇게 시작했다고 해도) 팔기 위한 - 솔루션에만 집착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찬성도 있고 반론도 있는데, 반론부터 말하면,

솔루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돈을 벌기 이한 단위도 될 수 있지만 (제품이나 서비스) 이것은 기업 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의 단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안을 파는 기업이 있는 한 (회사 담당자가 직접 보안을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여 방어책을 세우지 못하는 상황) 자산인 회사를 지키기 위해 외부 솔루션을 검토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보안 기업은 이를 솔루션화 해서 그 회사 담당자에게 이를 보이고 설득해야 한는 해결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차이(갭)이 있는 것인데,

이 때 팔려고만, 또 돈을 지출하려고만 해서는
결론적으로 엄한 산에 올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입니다. 

찬성의 입장은 당연히,

보안은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만하는 것은

자발적인 보안의 개념에 해당하는 "균형"입니다. 어디나 중용이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립이 아니라 내재화 개념이 있는 적극적인 개념이라 하고 싶습니다.  

모든 보안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은 모두 동감할 것입니다. 스스로, 혼자
하다가는 주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를 수 있겠지요. 방어 노력은 분담해야하고 또 효율성(가용성)이 뒤 따라야 합니다. 

또한 먼저의 측면에서의 보안은 솔루션에만 집착하는 산업화를 추구해서는 안되고 솔루션을 도입하는 회사의 업무에 스며들도록하는 것에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업무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말은 곧 업무를 하는 사람에게 이해되어야 하고 업무와 유기적인 연결이 있어야 보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보안만은 보안이 아니라 더 큰 사고를 일으키는 리스크로 고스란 떠 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따로국밥 보안 업체만 배를 불려는 꼴이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많이 진도가 나갔습니다. . 정리하면,

1. 솔루션으로 법금하는 보안 산업은 지고 있습니다. 
2. 업계가 볼 때는 서비스로 접근하고 싶지만,
3. 그 서비스는 결국 보안을 원하는 기관에서는 사람과 조직에 스며드는 들고 업무의 연속성과 사용성을 고려하제 않으면 안되게 업무 환경부터, 특히 사람이 바뀌고 있습니다. 
4. 그렇다면 보안을 도입하는 기관은 보안을 더 이상 솔루션으로 서비스로도 생각하지 않고 조직 문화로 생각하는 것이 다 적절해보입니다. 
5. 지금으로서는 보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 단어 "조직 문화" 로 밖에 표현할 새로운 단어를 못찾았을 뿐 입니다. 

하지의 짧은 밤이 가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년 6월 18일 화요일

두려움 보다 준비된 믿음


회사 신우회 모임 후 처음 글을 올립니다. 

신우회를 하면 다른 멤버들 나눔을 통해 얻는게 많습니다. 6-7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날 성경 말씀이나 나눔 자료, 기도 제목을 나누고 실제로는 5분 정도 기도하는데,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으면 아주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듯 마음이 새로워지고 기도에 감동을 받고 힘을 얻게됩니다. 

특별히 올해에는 성경통독을 하면서 제가 직접 인도자 되어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나눔을 듣는 것도 좋고 기도하는 것도 실제로 큰 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한 날이고 또 좋은 내용이 있어   나눈 것들 중 저의 중심으로 느낌이 있었던 것을 정리합니다. 

오능 묵상 자료는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마라"  입니다. 

첫번째, 믿음은 두려움보다 빠르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이미 쌓아두 믿음이 없다면 그 두려움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믿음을 "연습"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시간 상 두려움보다 먼저 오게됩니다. 믿음이 먼저 생기지만 점점 없어져서 두려움이 되는 것이지 어느날 갑지기 두려움이 혼자 생기지 않는것이지요. 

생각해보자구요. 

두려움이란 믿음에 근거한 상대적인 느낌입니다.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고로 이것은 속임수 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어느날 일을 하고 있는데 두려움이 생기지 일을 하고 있지도 않는데 갑자기 두려움부터 생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믿음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으나 어떤 계기가 있어서 그 믿음이 안보이게 된것이 두려움이지요. 그럴때는 두려움을 물리치기 보다는 (보이지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속임수 개념이므로) 전에 가졌던 믿음을 빨리 생각해내는 것이 수입니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두려움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럴때 어떤 믿음을 생각해내어야할까요?

글이 길어졌네요.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하겠습니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큐티하는 방법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highersights/6231641551

아침에 묵상하는 방식이 나를 새롭께 깨우고 있는 것 같아 나름 묵상하는 방식을 정리합니다.

묵상은 창조

저는 묵상을 주로 아침시간에 합니다. 요즘 창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침 묵상 시간이 창조의 시간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 어둠과 혼돈 가운데 하셨던 것 처럼, 어둔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혼돈의 꿈속에서 깨어나서 말씀으로 질서를 잡는 것이 마치 천지창조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출근길 버스나 전철에서 보고 있으면 그저 지나가버릴 만원 출근길이 창조의 시간이 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 책이나 영어 공부, 업무를 할 때도 있지만 그 무엇도 창조라는 생각을 못하는데, 그것이 길바닥이 되었던 만원 전철이 되었던간에 큐티를 하고 있으면 묘하게 창조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장 주욱

우선 저는 성경 본문을 주욱 읽어 나갑니다. 하루에 한장을 기준으로 하고 성경책 순서대로 읽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한글로만 혹은 한가지 버전 보다는 두가지 버번으로 교차해가며 읽으면 그냥 지나칠 내용이 마음에 닿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영어 버전과 같이 읽는데 잘 못하는 영어지만 문득 문득 깨달음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주욱 읽어 가면서 마음에 느껴지는 바, 혹은 신기한것과 할말이 생각난 게 있으면 적으면서 봅니다. 저는 주로 출근길에 하기 때문에 책이나 공책에 아닌 아이패드로 성경앱과 에버노트를 활용합니다

4가지로 정리

그렇게 적다 보면 어느새 한 장을 다 읽습니다. 그리고나서는 아래 질문 4가지를 하고 답을 생각하고 다시 찾는 과정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은?
2. 교훈은?
3. 적용은?
4. 나는?

원래 3번까지 했었는데 권민의 <자기다움>을 읽고 4번이 생겼습니다. 적용점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다짐을 하게되는데 나를 돌아보고 살필 때 자연스러운 묵상의 과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1번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던 시선이 교훈을 받고 내 주위(적용)를 지나 나에게로 집중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내 안에 가느다란 한 줄기가 언젠가는 굵고 깊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늘의 경험으로 이 포스팅을 하게 했는데 그것른 바로 말씀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말한데로 저는 하루 한 장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에 특별히 닿는 느낌이 들거나 특이한 점, 그리고 뭔가 할말이 있으면 본문 절을 복사해 붙이고 저의 말을 적는데 바로 이렇게 적은 것과 본문의 키워드들이 '나는'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것입니다. 제가 바로 발견하고 저에게 닿은 부분이니까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누가복음 5장을 묵상했는데 본문을 주욱 읽으면서 1차 (이 1차 단어로 생각난 단어가 아닌) 단어로 "따르다, 바로 앞, 한적한 곳"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글을 적는 순간에도 이 단어들을 잊기는 했지만 아마 같은 본문을 보면 또 똑같은 단어을 산택했을 것이고 아니면 변화된 내가 그 때 나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단어를 뽑고 말씀의 단어들을 나에게 적용시켰을겁니다.

이렇게 선정된 단어들로 묵상하다보면 '이다, 아니다, 하고싶다' 등으로 말씀이 내 안에 창조의 질서가 잡히는 것입니다.

결론

아무튼 말씀 묵상은 내 안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매일매일의 순간이고 이런 창조의 역사가 '나는'의 내가 만들어질것이라 확신하고, 새롭게 창조되는 나를 기대해봅니다.

#퇴근길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나를 블랜딩하여 <자기다움> 으로 브랜딩 하자!



시간에 맞추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는 하지만 이 책은 한번의 서평으로 끝날 책이 아니다. 이유는 이 책이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질문이다. 간단하게는 "너는 누구냐?" 인데, 구체적으론 몇 개만 적어본다면, "너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 "너의 브랜드는 무엇이냐?", "너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이냐?" "시를 써봐라, 꿈을 적어봐라" 등, 어떻게 보면 답이 없는 매우 추상적인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내 앞에 덩그러니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문제는 이제 답할 때가 되었다는, 이 알 수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더욱 불안한 것은 이런 질문들에 명확히 답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이라는 것이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즉 더 늦기 전에, 더 심하게 쓴다면 후회의 ‘스나미’를 맞보기 전에 어서어서 정리해 두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고 할까. 이 책 저자의 의도의 총알에 정확하게 심장을 가격당할 것 같다.

그래서 몇 차례에 걸쳐서 - 질문에 답도 해보고, 정리도 할 예정이다. 앞으로 정리되는 것은 블로그를 통해서 나누거나 노트에다가 정리를 할까 한다.

이 책은 아마도 호 불호가 뚜렷하게 불리 될 것 같다. 나에게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우 호감으로 나을 것 같고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즉, 나의 추천도서 목록에 바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자기개발 서적을 잘 읽는 편인데 (정확히 말하면 자기개발을 위한 서적이겠다) 이 책은 나 나름 그 전에 읽었던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하루 약속> 이라는 책이 주는 충격과 여운에 견줄만하다 라고 할 수 있다. 근래 이 세 권의 책이 나의 삶의 운동 방향을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 놓고 있다.

밑줄 치며 가슴을 친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것은 다음 번에 노트로 정리하면서 책이 나에게 던진 이 질문들에 답하여 보기로 하고 그 중에서 나에게 직격탄으로 날린 몇 가지에 대해서만 정리하려 한다.
새벽을 크로노스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다. .. 어제 미뤄둔 일을 새벽부터 하는 사람들, 이란 사람들에게 새벽 시간은 추가된 '냉면사리' 처럼 2시간을 덤으로 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96
집이 회사와 멀게 되면서 아예 새벽에 출근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퇴근 후 몸이 무거운 아내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정시에 퇴근을 우선 하고 새벽에 일을 했던 것이 아예 새벽에 출근해서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6시 즈음에 퇴근해서 밤 12시 즈음까지는 가정에 집중하고 그 이후에 잠을 조금 줄여서 회사 일을 하는 식이 아예 새벽 3-4시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조금은 여유 있게 업무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지만 어떤 방향과 목표를 생각할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이는 일을 해 치워버리는 딱 'to-do list'에서 취소선 처리하는 것이 이상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나 개인적에게도 있어서 위에서 언급한 책들에서 쏟아져 나온 질문들을 어서 빨리 답을 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어 늘 화장실에 가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이 나에게 해결책을 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답은 주었다. 

내가 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어껀 일이든 나의 자기다움의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 260
이 부분은 참으로 도전적으로 나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 책의 저자는 소싯적에 (지금은 대표이시니) 제안서를 만들 때 3가지 버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는 지시사항 그대로, 두 번째는 자기생각과 지시사항을 반반씩, 그리고 마지막 것에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된 버전으로 말이다. 당연히 주위에서 또는 상사는 이를 말렸다고 한다. 나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 순간, 나는 이 3가지의 버전이 구분도 가지 않을뿐더러 지시사항도 못 따라가는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들어서 매우 부끄러웠다.
내 일속에서 자기다움이 지문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이 한 문구가 작은 일 하나, 작은 문서 한 건에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종처럼 울린다. ‘다른 사람처럼’이 아닌 나처럼, 나의 나다움이 베어나올 수 있도록 - 그러면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 되게 된다 - 힘써야 하겠다.
나는 창의성이야말로 자기다움을 구축하는 최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창의성으로 나답게 일하고 그 일의 궤적을 분석하여 자기다움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리 결론이고 핵심이다.
핵심적인 내용이라 마지막으로 뽑아 보았다.
 
결국은 창의성이다. 창의성을 어떻게 나답게 발휘하느냐, 그것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그런 부분을 별도의 시간을 내어, 별도의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아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전문성의 일을 통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일속에서, 그리고 지금의 이 도전적인 이 상황에서 나답게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쌓여 후회하지 않을 미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리고 나와 가족들, 그리고 나아가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자각과 발전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변화가 있게 되기를 소망하게 된다.

2013년 2월 17일 일요일

<사소한 차이> 밥먹고 와 바로 양치 하기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krossbow/170839660


이 책을 읽고 내 생활 속에서 사소한 차이를 한번 찾아보려고 했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낸것 같습니다. 잘 찾아지지 않다보니 잊었다고 핑계를 해야 할까요? 하지만 계속 이 책과 내용에 대해서 생각이 났고 드디어 오늘 작지만 사소한, 정말 사소한 차이 한가지로 글의 포문을 열어봅니다.
저는 보통 식사를 조금 늦게 하는 편입니다. 운동을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짬이 없습니다. 물론 그 짬으로 운동하는 거 맞죠. 그렇기 때문에 밥먹고 바로 올라와서 업무에 다시 몰입해야 합니다. 오전에 했던 일을 마무리 하고 오후에 또 내일과 모레의 목표를 생각하면서 방향과 할일, 만난 사람, 협조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서서히 배를 몰아가야하죠. 

그렇기 때문에 양치하는 것을 가끔 생각하거나 빨리 업무에 몰입하는 것 때문에 먼저 메일이나 오전에 하던 업무 마무리, 급한 시한까지 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느라 밥먹고 올라오면, 자리에 앉아서 업무PC에 로그인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참을 일을 하다가 1-2시간 후에 양치 생각이 나면 그 때 양치를 하러 가면서 허리를 한번 피게 되죠.

혹은 얼마 남지 않은 점심시간 좀 쉴 요량으로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시간을 쉽게 흘려보내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양치는 하긴 해야하는데, 일과 쉴 생각으로 그냥 바로 스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래전부터 의식적으로 이 부분에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앉지 않고 양치할 것을 꺼내서 바로 가글룸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효과가 있는 (그래서 뭐가 좋은데?) 정말 가치 있는 '사소한 차이'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이런거죠, 이 책 <사소한 차이>의 첫번째 차이가 '마감시한 2일 앞당기기'인데 이것은 정말 사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업무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인 효과가 있는 일이거든요. 

근데 뭐 점심먹과 와서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양치를 하러 가는 것이 뭐가 그리 의미가 대단한 사소한 차이냐고 물어보신다면 뭐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해보시면 (제가 주위에서 그런 분들이 있는지 한번 보았는데 별로 없더라구요, 한 1-2분이라도 컴퓨터 열어보고 양치를 준비해서 가지요) 이것이 이 행동 패턴에서만 의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약간은 귀찮은' 일이 닥쳤을 때 바로 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별로 큰 의미의 사소한 차이도 아닌데 길게 쓰면 더 의미 없어지니 바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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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렇게 책에 대해서 이어쓰기(책의 내용을 내 삶에 적용하여 그 책의 내용이 내 삶에 이어지게 하는 것)를 통해 책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