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러자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내가 나오미의 땅을 사는 일의 증인입니다. 나는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속했던 모든 것을 사겠습니다. 그리고 말론의 아내였던 모압 여자 룻도 내 아내로 맞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룻의 죽은 남편의 재산이 그의 집안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그의 집안에서나 그의 땅에서 영원히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9~10절)나 에게도 천국에 땅이 하나 있었는데, 인류가 타락하여 내가 가야할 땅 - 천국에 땅이 있어야 가지 않겠는가 - 이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따.. 그래서 보아스가 그 친척 집안의 땅을 사고 그리고 그 집안의 딸(롯: 이미 과부가 되어 버린)과 결혼을 하면서 그 집안의 그 땅을 그대로 남아있게 해주었듯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소유주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나의 천국의 땅을 돌려주어 남아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이 되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천국의 영적인 원리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 태어나는 이야기로 풀어서 설명하다니 말이다. 우리는 다 롯과 같은 존재들이다. 나오미와 같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오미의 다른 며느리도 될 수 있다.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구체적인 '나의 것', '원래의 것'이 회복된다는 의미이다.
그 러나 그것은 천국에 가야만 보이는 -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오늘 큐티하면서 이르게 된 생각이다. 지금 여기에서도 그 땅을 "내 안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보아스가 사주어 다시 유지시켜준 땅은 바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만들어 놓으신 어떤 것 - 그것이 땅의 속성처럼 나를 이루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회복되어야 할 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라고 아직까지 생각한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알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 그 속성, 내 안에 있는 땅. 원래 있던 그 땅, 속성이 나에게도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구원 받았다면 - 보아스에 의해서 구속되고, 예수님에 의해서 영적으로 완전히 구속되었다면 살아 있을 하나님이 나를 향해 심어 놓으신 그 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배는 나를 향한 발견이 될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속성과 나의 속성이 만나는 장소이다. 시간이다. 내가 지금 당장 내안에 살아 있는 그 땅, 속성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믿음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예배 안에서 그 모든 것을 한다면 하나님이 내 안에 놓으신 땅을 알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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