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5일 화요일

고난주간 성 화요일 묵상 2014년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 요한복음 12:24-25


천관웅 "밀알"
http://youtu.be/zbBoxceEixg

매주마다 회사에서 신우회 모임을 한다. 점심시간에 잠깐 모여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도 하고, 약 한 30분 정도 그날그날 묵상 내용에대해 잠시 이야기한 후, 나눈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인도는 서로 돌아가면서 하는데 인도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하기도 한다.

오늘도 모임을 가졌는데 오늘 묵상 주제 때문에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내용이 떠올랐고 이를 고난주간 성 화요일에 간단히 메모해본다.


바로, '실패'에 대한 것이다.

나중에 한번 따로 정리하려고 하는 것 중에 #퇴근길 에 대한 생각이 있다. 항상 급하게 퇴근을 하는 편이라, 퇴근할 때 생각이 많다. 걱정도 많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퇴근길에도 이어지곤 한다. 메일 확인이라던가, 일정 관리, 전화 통화 등을 하면서 퇴근 아닌 퇴근을 하는 것이다. 이 때 많은 생각이 든다. 그 중에 '실패'에 대한 느낌이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다.

하루는 이 '실패'에 대한 느낌이 나를 너무 짖누르는 것을 느끼고는 그러 감정부터 시작해서 내용, 상황 등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이 실패에 대한 느낌은 나의 정체성부터 많은 부분을 잡고 휘두르지만 이것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흩날리던 낙옆들이 마치 바람이 잦아들면서 다시 길위에 떨어지고 그것을 다시 빗자루로 쓸어 모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나름 좋았다.

그 때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참 실수를 잘 하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가 나를 너무도 힘들게 했다. '나는 원래 그런건가? 고쳐질 수 없는 부분인가?' 무엇보다 나의 실수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힘들어 진다는 사실이 더욱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 하실 때까지만해도 모든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찬송을 했는데 일주일도 안되 돌변하더니 결국 같은 입으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다. 

그럼, 예수님은 실패하신걸까?!

잡히시고 온갓 고초를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으실 때 과연 스스로를 실패하셨다고 생각하셨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다. 

실수던 실패던 그것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뼈를 깍는 노력도 해야한다. 우리 주님도 그것을 바라실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고 내가 하나님을 통해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실패의 경험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 노력으로만 사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씩 주님께 맡기는 연습으로 삼고 꾸준이 그것을 내 노트와 마음에 기록해간다면, 그리고 거기에 말씀을 더한다면! 반듯이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 내가 일하는 분야에 이슈가 많다. 연일 '최악, 최대'의 사건 사고들의 연속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나와 관련된 일은 매달 실패 케이스(lowlight - highlight의 반대)에 오르고 있다. 나는 이 문제들을 단순히 '아- 내가 잘못했구나'로 판단하고 생각할 있었지만 이 문제들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매우 잘못되었고 바로 잡혀야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 문제를 들여다보면 너무 복잡해서 나는 커녕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또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생각도 (거기서 절대 그치지 않고) 자르고 자기 주장(강요)까지 한다. 내가 잘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다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다. 물론 여러가지 경험도 같이 하지만 오늘은 그 중 실패에 대한 생각으로 고난주간을 통과하고 있다. 

실패라는 것이 내 맘대로 혹은 내 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독생자 아들과 함께 세상을 지으시고 그 아들을 그 세상위에서 죽이셨다! 









2014년 4월 14일 월요일

고난주간 성 월요일 묵상 여러가지 생각 2014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스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 요한복음 12:7-8



박종호 "눈물로 씻은 발"
http://youtu.be/XM56yGD0cwM

글을 너무 오래 동안 안썼네. 책도 마찬가지 거의 읽지 않고 있다. 뭔가 잘못되가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컴퓨터가 (일예로, 집에서 사용하는 내 노트북, 맥프로)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이러스도 막 걸리고... 바이러스가 걸리는 이유는 그런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패치도 안하고 백신도 설치 안하고 막 아무데나 접속하고 아무거나 다운받고 하면 최악의 경우 수일 내 그 컴퓨터는 부팅도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컴퓨터와 오래 일을하다보니 별 생각을 다 한다. 하지만 너무도 적절한 생각 같다. 거기에 한번더 생각한다면 이 컴퓨터 안에서의 글쓰기, 이 블로그야 말로 또 내 내면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쓰고 싶지만 쓰지 못하는 글... 매일 대면하여 내 마음을 쏟아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의 시간 부족...

일하다 문득, 오늘의 고난주일 월요일인게 생각이나 이 마음을 어디에 잠깐 적어두어볼까 하다가 다시 블로그를 찾게 되었다. 마지막 글이 작년 2013년 8월 26일이다. 그만큼 내 마음이 방치되거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가 하나 딱 있다면 그 간 우리 둘째가 첫 돌을 맞았다는 것이다. 내 마음은 정지되어 있었지만 우리 딸은 컸다! 우리 첫째 '보배'(태명)도 부쩍 컸다. 말도 너무 잘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고난주간을 맞아 다시 마음 앞에 서는 일을 해야겠다. 그간 새로운 비전도 생겼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느때보다 감격스럽다.

다시 고난주간 월요일의 마음...

아침에 문득 오늘의 고난주간이어서 이 기간을 통해,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좀더 새로워지는 한주가 되기를!
정말 그랬다. 고난으로 인해 사람은 새로워지는 것 같다. 내가 당해야 할 고난 - 내가 이제것 살면서 당해보지도 않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고난을 우리 주님이 대신 당하셨다. 예수님은 그로 인해 부활하셨다. 그 부활의 영광은 고난의 참예한 사람에게 (감사하게도!) 동일하게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고난은 나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나를 잘 알기에 참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나는 나를 절대 뛰어 넘을 수가 없다. 나로인해 그 무언가가 고통을 준다면, 예수님으로 인해 그것이 치유되는 것도 경험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아직 어렵다.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글을 쓸려나)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너무도 잘 안다. 그의 행적 - 복음서, 그 성경 말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나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해가 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온전히 평온해진다. 나 혼자 나를 생각할 때와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좀 더 새롭게 되어지는 나를 기대한다. 다시 나를 대면하여도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또 다른 나인 우리 아내, 아이들을  대할 때도 좀 더 새롭게, 좀 더 하나님 닮은 모습과 방법으로 대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2013년 8월 26일 월요일

영어에 살자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21606462@N02/4622711317

처음으로 외국인과 전화로 대화를 했다. 물론 관광을 가서 호텔에서 직원과 통화하는 것 말고 말이다.

다 알아듣지 못하고 다 말하지 못해서 회사서 집에 오는 동안 영어 방송을 들으며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영어는 언어니까 습득하고 공부의 대상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느낌- 그러니까 삶의 여러 모습과 연관이 깊구나 했다. 

물론 이는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아, 영어 생각만큼 잘 안되네- 영어에 살아야 겠구먼" 했을 때 똑 같이 영어를 들으며 출근 할 때의 관점이 이전과 약간 달라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느낌에 불구하다. 이것이 사실로, 또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하던데로 계속 연습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해야할 것이다. 

2013년 8월 5일 월요일

열왕기상 11장을 항상 기억해야한다.

신우회 1년 성경통독으로 열왕기상 - 솔로몬의 이야기를 읽다가 묵상한 내용입니다.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44426846@N03/6983252539

하나님은 죄악을 그대로 놔두시지 않는다. 

솔로몬은 그렇게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받아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가 말년에 하지말아야하는 외국여자를 데려왔고 또 그들과 즐길 뿐 아니라 그들이 하자고 하는데로 우상 신 섬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죄 짓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했던 것이다. 그의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를 읽고 바로 이 부분을 읽어서 그런지 그는 허무에 빠져버려 이제는 헛된것 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살기로 한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은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그 때에도 나타나 친히 말씀하셨고, 게다가 그렇게 평화로운 지평이 대적들이 하나 둘 일어나는 상황으로 개입하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말씀을 7월 중순께 읽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전도서를 다 읽을 때 그저 솔로몬의 최후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 다음 장을 이어 읽기 위해 이전 장의 내용을 훑어 보던 중 이 말씀이 나의 상황과 함께 마음에 들어오게 된것이다. 바로 지금의 상황 때문에 그런것 같다. 

나는 나의 지금 경험하는 상황이 그냥 그저 단순히 마음이 아픈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솔로몬처럼 지혜를 가진것도 아니요, 또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나를 그와 같이 소중하게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말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죄를 짓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라는 것이다. '내가? - 나 힘들어.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런데 죄라니? 죄는 한가롭게 할 것도 없어서 쓸데 없는 짓으로나 하는거 아냐?' 하는 생각이 항상 나를 죄 없는 사람, 죄 지은 틈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를 지었고, 아직도 죄인이며, 삐뚤어져 있고 옳바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되었다. 솔로몬처럼 돈이 없어서 그렇지 나는 이미 마음으로는 벌써 외국 여자들에다가 우상 산당을 백만개도 더 지었다. 그 우상은 나를 즐겁게하는 세상의 모든 신이다. 나의 오감(five sense)이야 정말 몇 안되지만 그것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산당은 얼마나 많은지 눈앞에 가득할 정도다. 

자, 이제 실상과 상황, 그리고 말씀의 메시지를 알게되었으니 결단을 할 때다. 결단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말로도 혹은 글로도 아닌 행동으로, 매일의 삶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있는 이 지하철의 공간에서 또는 새벽의 조용한 시간에서 소리 없이 더욱 치밀하게 나의 생각의 직조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상하게 하는 좀벌레 다루듯이 해야한다는 말이다. 

솔로몬처럼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3년 7월 5일 금요일

주말을 맞이하는 마음 자세

이번주는 정말이지 한 것 없이 월요일 다음 금요일이 된것 처럼 한 주기 쏜쌀같이 지나깄다. 오히려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것은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된다. 

이런 느낌은 월요일 출근길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해서 알게된다. 마치 다른 사람이 따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금요일 희망에 가득찬 퇴근길에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금요일의 마음을 월요일 출근길에도 동일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에서다. 월요일이 힘든 이유는 육체적으로  피곤함은 더욱 아니고 한 주가 걱정되서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경우) 주말을 (안식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다. 즉, 금요일의 기대치가 월요일에 그만큼 정리되지 못하기 때문에 빈 마음이 들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여기에 적는 것은 계획이 아니다. 어떻게 주말을 보내겠다는 어떤 의지나 결의를 다지고자함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완전히 반대일지도 모른다. 


내가 계획해서 '이렇게 저렇게 주말을 알차게 보내야지' 라고 생각하면 100% 실패한다. 내가 의지가 약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나의 경우는 그랬다. 만족할 수 없은 것은 월요일 아침 뿐이 아니다. 주말 내내 초초하고 불안한 내면을 간직하고 지낸다. 그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 모두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내가 결단내리고 '헌신'해야하는 것은 나 자신의 기대가 아니라 가족이고 나의 내면세계이다. 나의 중심, 근본된 마음 말이다.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 자신의 마음에 헌신해야한다는 말이 모순으로 느껴질수도 있겠다. 전자의 나 자신은 사실 나 중심이라기 보다 내가 만든 기대치에 불과하다. 후자처럼 마음을 집중해서 보고자 할 때 시간을 초월할 수 있고 온전히 나를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할 일을 진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을 나는 이번 주말에 헌신해 보려한다. 

가족이나 만나고 챙겨할 사람에게 헌신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말은 그들과의 관계에 힘써야한다는 것이다. 관계 중심이 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리라. 이번주만이 아니라 조금씩 쌓아 가는 것이 아닐까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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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 글을 쓰며 퇴근하면서 해야할 회사 일을 가지고 가서 해야함에도 자료는 두고 오고 지금 이시간 우리 보배는 열이 38도가 넘는단다. 

2013년 7월 2일 화요일

확신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7시간 근무한 것보다 1시간 이야기를 하는게 힘들구나 - 새삼 알게된다. 

오늘 같이 나눈 이야기가 내 마음으로 이어진다. 

생각보다는 질문이다. 나는 어떤 확신으로 이자리, 오늘날까지 이르렀지?! 어떻게 중요한 인생의 고비를 넘겼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보잘것 없는 믿음과 확신이었지만 나름 확신을 믿으며 온 것 같다.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특히 오랜기간 동안 아내가 내 곁에서 때론 지팡이 또한 말씀의 전달자로서 지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나의 확신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확신을 확신 할 수는 있는건가?!

동등한 개념과 동등한 레벨의 속성이 서로 확신을 줄 수 있을까?! 즉, 내가 생각하고 내가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 모순아닐까?!

아니다. 이건 모순이 아니라 단편적이서 그렇다. 여기에 인정이라는 개념과 관계라는 시간을 드리우면 확신은 확신을 할 수 있다. 

확신을 인정해주는 누군가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자동 응답기처럼, 자판기처럼 나오는 무엇이 아니리라. 시간 속에서 관계가 깊을 때 찾아오는 믿음라 할 수 있다. 

내가 어떤일을 하고자 했을 때의 확신을 확신할 수 있는 힘은 그 일과 그 주변에 관련된 사람들의 인정과 그 인정을 끌어낼 수 있는 지속적이고 신뢰된 깊은 관계가 규명을 해준다. 물론 이것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 인생이기 때문에 사람을 지으신 만군의 여호와의 인정과 인격적이고 살아있는 관계여야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또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Here and now, I'm looking for You, my Lord.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가장 가까운 예배, 일상의 노래를 들으며,,

한웅재2 앨범의 한 노래를 들으며 오늘의 신보라 알려보려고 페북에 올리다가 작은 글이 이어져 여기에 기억해둔다. 


두마음

그대의 마음 속 어딘가 있는 그 빛을 일상으로 꺼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줄 그 힘을 세상으로 꺼내, 한 순간 나를 건너 그에게로 나를 넓혀가는 그 때,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 하늘이 말씀하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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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딱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하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가 아닌것 같기도 하는 마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계속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 하지만 그 때는 결정의 순간 아니라 결단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생각의 주체자인 나를 떠나서 나를 지으신 분을 생각하고 맡기기 시작하면 생각의 길은 바람을 타게되는 것 같다. '그 길이 맞아?' 로 시작했다가, '그래, 그 분과 함께 가보자!'로 마무리 하면서  앞으로 쑤욱 나아가게 되는 경험- 사람이 혹은 일이 힘들어질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면 그분의 마음으로 사람도 일도 품게 될거다. 그런 일이 일어날려면 내 손에 꼭 쥐고 있는 무거운 것이 무엇이 없나 보게 되고  좀 더 마무리를 잘해보려고 하게 된다. 

새로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마음에 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