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johnrchildress.com/2014/03/30/a-new-paradigm-for-executive-search/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찾는다. 아침에 출근하며 들을 노래를 검색하고, 볼만한 기사가 없는지 본다. 바야흐로 검색엔진이 지배하는 세상아닌가?!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의 핸드폰의 80%이상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이니 말이다. 우리는 덕분에 편리해진 이 스마트폰으로 맛집도 찾고 목적지, 길, 방향, 찾고 싶은 것 무엇이라도, 하다못해 친구도 찾는 세상이다.
찾는 것이란 전제에는 항상 더 좋은 것이 없을까, 이왕이면 더 싸고 질 좋은 것,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깔려 있고, 그래서 검색이라는 먼길을 나선다. 검색의 심리에는 불안함이 있다. '못찾으면 어떻게하지?'
이것은 정보가 주는 잘 못된 결과다. 정보란게 편리한 것 같지만 이로인한 스트레스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아마 정보화는 지금 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것은 정보가 주는 잘 못된 결과다. 정보란게 편리한 것 같지만 이로인한 스트레스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아마 정보화는 지금 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내 마음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찾는 것 말고 찾아오는 것 - 그것에 우리는,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지? 문든문득 드는 생각의 인사이트, 묵상, 휴식 등이 있는지 말이다. 우리 삶은 온통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잠시라도 눈을 감고 나를 비롯하여 가족, 주변사람, 이 나라, 온 세상을 (인터넷 검색 없이) 생각하고 그 결과를 행동에 옮긴 적이 있는가 말이다. 나부터서도 외부의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다. 누가 그랬고 뉴스와 반응이 이러하니 나도 그정도 생각하여하나 싶다.
하지만 이와 반대편 입장에서 이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어찌 정확이 아냐는 거다. 지피지게 백전백승! 외부의 정도에 대비해 생각을 넓혀가야, 비교해야 내가 어찌할지 알지 않겠냐는 거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많이 찾아서 아는 만큼 내 행동, 생각의 반경이 커진다는 것은 정말 그렇다.
정말 그런가? 이것도 정보의 역린아닐까?! 즉, 내게 약한 부분이 있어서 뒷쳐지고 나란 존재를 남과 비교하여 어느 위치에 두지 읺으면 불한한 그 무엇 말이다.
왔다 갔다 한다. 무엇이 옳을까?! 내 생각에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불안함인데, 이는 인간의 한계 - 세월호 앞에서 느끼는,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하루하루 반복하며 느끼는 나의 실수와 무능함에 직면하여 느끼는 존재을 불확실성 때문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하란 말인가? 그 누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그러다 방대해진 이 정보화 바벨탑을 매일 검색하며 사는 것 아닌가?!
나는 결국 인간의 바벨탑이니 하며 거창하게 논하려는게 아니다. 때론 검색에만, 외부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멈추어 서서 나를 찾는 사람, 필요로하는 곳, 손 길,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음성(성경 망씀)에 마음을 열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다. 이는 검색으로 안된다. 앉아서 태고로부터 정해진 말씀을 읽고 외부로 향한 눈을 감고 내면에서 들리는 - 생각과 영혼이 이어지고 하나님 음성으로 문득 떠오르는 그것을 매일 잡아야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미래가 있고 그래야 남을 인정하게 되고 세상을 향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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