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죄악을 그대로 놔두시지 않는다.
솔로몬은 그렇게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받아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가 말년에 하지말아야하는 외국여자를 데려왔고 또 그들과 즐길 뿐 아니라 그들이 하자고 하는데로 우상 신 섬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죄 짓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했던 것이다. 그의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를 읽고 바로 이 부분을 읽어서 그런지 그는 허무에 빠져버려 이제는 헛된것 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살기로 한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은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그 때에도 나타나 친히 말씀하셨고, 게다가 그렇게 평화로운 지평이 대적들이 하나 둘 일어나는 상황으로 개입하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말씀을 7월 중순께 읽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전도서를 다 읽을 때 그저 솔로몬의 최후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 다음 장을 이어 읽기 위해 이전 장의 내용을 훑어 보던 중 이 말씀이 나의 상황과 함께 마음에 들어오게 된것이다. 바로 지금의 상황 때문에 그런것 같다.
나는 나의 지금 경험하는 상황이 그냥 그저 단순히 마음이 아픈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솔로몬처럼 지혜를 가진것도 아니요, 또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나를 그와 같이 소중하게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말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죄를 짓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라는 것이다. '내가? - 나 힘들어. 얼마나 힘든지 몰라. 그런데 죄라니? 죄는 한가롭게 할 것도 없어서 쓸데 없는 짓으로나 하는거 아냐?' 하는 생각이 항상 나를 죄 없는 사람, 죄 지은 틈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죄를 지었고, 아직도 죄인이며, 삐뚤어져 있고 옳바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되었다. 솔로몬처럼 돈이 없어서 그렇지 나는 이미 마음으로는 벌써 외국 여자들에다가 우상 산당을 백만개도 더 지었다. 그 우상은 나를 즐겁게하는 세상의 모든 신이다. 나의 오감(five sense)이야 정말 몇 안되지만 그것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산당은 얼마나 많은지 눈앞에 가득할 정도다.
자, 이제 실상과 상황, 그리고 말씀의 메시지를 알게되었으니 결단을 할 때다. 결단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말로도 혹은 글로도 아닌 행동으로, 매일의 삶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있는 이 지하철의 공간에서 또는 새벽의 조용한 시간에서 소리 없이 더욱 치밀하게 나의 생각의 직조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상하게 하는 좀벌레 다루듯이 해야한다는 말이다.
솔로몬처럼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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