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 요한복음13:25, 새번역
아름다운사람들 "유다 같은 나"
첫째 아들 보배(태명)는 이제 40개월이다. 말도 곧잘 하고,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보배는 어린이집에서 말씀을 암송하는데 (지금 줄줄 암송하는 구절만 7개) 어제도 자기전에 해보라고 했다. 이번엔 말씀 구절이 워낙 길어서 같이하다 내가 틀리니까 거꾸로 나를 가르친다. 자기 말을 따라하라는 거다. 내가 보배에게 가르쳤던 그대로 말이다. 어찌나 놀람과 웃음이 나오던지 한참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그만큼 내 아들은 크고 있었다. 이제는 하나 둘씩 내가 손이 가야하는 것도 혼자서 한다. 신기하기만 하다. 화장실도 이제 같이만 가면 알아서 잘 한다. 앞으로 이렇게 그는 나의 손길을 덜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이제 혼자하는 걸 더 좋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만큼 육체적이지 않은 정신적인 부분, 또 영혼의 문제에 가까이 가도록 신앙의 훈련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기에 총체적으로 봐서는 커갈 수록 서로를 공유하는 시간은 많아질 거라 기대해도 되겠지?!
하지만 보배는 아직 어려서 대화중 대부분이 소위 통제적인 말, 명어조가 많다. "그거 안돼, 이거해, 먹어" 등등이 주요 저녁 시간에서 잠들기 까지 분위기다.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그대로이고 보배는 커서 나와 같은 키에 같은 눈 높이로 대화하는 상상이다. 그냥 문득 든 생각인데 미래를 잠시 엿본거 같은 뭔가 모를 감정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기에 보배가 커서 어떻게 같이 지낼까는 그저 상상에 불과 했는데 (좀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대로이고 보배만 커서 나랑 같은 나이 혹은 같은 성인이 되어 내 옆에 있게되면 어떨까? 이것은 참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아, 인격적으로 대하는게 이런거구나' 느낌이 왔다. 지금 비록 그가 어려서 부모에 의해 많이 통제를 받아야하지만 어느정도 크면 전혀 아닐 것이다. '아, 그럼 내가 보배를 어떻게 대해야하지? 적어도 마음만으로는 그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예수님은 누가 자신을 팔지도 다 아셨으면서 끝까지 그를, 그리고 모두를 정말로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어찌 이럴수 있을까 할 정도로 평안하셨고 자신의 때가 가까이 오셨음을 아셨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인성보다 이제 신성에 더 가깝께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을 것 같은데 여전히 그 한사람을 포함해 모든 제자들과 또 우리 모두를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신성이 인격을 대하는 모습이다. 인성은 참 인격적이지 못할 때가 많은데 우리에게 내려오신 신성은 우리를 진정한 인격으로 대하셨다.
내가 보배에게 온전함으로 대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나도 하나님을 그와 같이 대해야겠다. 하나님이 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니- 새로워지는 순간이다!
고난주일 성 수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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